지난주 팟캐스트 주제는 기회였다.
편집할 때도 생각했었고 엊그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기회는 무슨.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좌절의 순간들만 생각난다.
그래도 운이 좋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던 건,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마다 나를 구해준 말들이 있었다.
1. 중학생
한국에서 머리 좋다는 소리만 듣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학교에 갔더니, 세상 맹추가 따로 없었다.
아무것도 못 알아듣고, 말도 못 하고, 쓰는 건 더더욱 못했다.
학교에 멀뚱히 앉아만 있다가 오는 게 고역이었다.
애들은 쉬는 시간에 10분이면 하는 숙제를, 집에 돌아와서 영어사전 붙잡고 3시간씩 하고 있다 보면, 눈물이 났다.
나무 책상에 눈물이 떨어져 젖은 나무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아직도 생각난다.
이게 언젠간 적응이 돼서 나아질까?
누가 조금만 도와주면, 길이라도 알려주면, 하라는 대로 하겠는데, 이러고 있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아득했다.
어른들은 아직 어려서 뇌가 말랑할 때라 금방 적응한다는데,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될까, 똑똑한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구나.
성적을 잘 받아놔야 대학도 갈 텐데, 시험 점수가 60점이 나오는데, 나 대학 갈 수 있을까.
특히 영어 에세이 테스트가 곤욕스러웠다.
하필 1년에 한 번 치는 시험이었다.
통과를 못하면 다음 해에 쳐야 했다.
또 치면 되지~ 이렇게 쿨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갑자기 수업 중에 불려나가기 때문이다.
시험 치는 장소에 가면 딱 봐도 외국인과 공부에 흥미 없는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내가 그중 하나임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한국 논술이라면 30분 만에 쓰고 나갔을 텐데.
한 시간 동안 종이만 노려보다 나왔다.
당연히 Fail이었고 또 울었다.
이때 처음으로 끝도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민망하고 자괴감 들고 슬펐다.
당장 나아질 수 없는 부분이고 기약도 없다는 게 무력했다.
맨날 쪽팔리러 학교에 갔다.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숨통 트일 시간도 있었다.
ESL, 외국인들만 모아두고 영어를 가르쳐 주는 수업이었다.
다 같이 영어를 못하니 손짓 발짓으로 대화했다.
그 수업에서만큼은 내가 모자란 사람이란 기분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었다.
1년 정도 그렇게 고생하고 나니 영어가 조금 늘었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단어를 조합해서 농담도 했다.
간절했고, 3시간씩 걸려도 절대 숙제를 포기하지 않았고, 수업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역시 아시안이란 소리를 들었다.
인종차별이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내가 못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님도 어린애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감명 깊으셨는지,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초대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헐~ 그렇게 대단한 쇼에 나갈 수도 있을 거라고?
계속 D만 받던 시절에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준 말이었다.
나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초대받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