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20일

정신머리

By In DAILY

우스갯소리로 올해 총기를 잃었다는 말을 한다.
사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기억력이 되-게 좋은 편이라서, ‘깜빡했다’라는 말을 쓸 일이 도통 없었는데, 제일 많이 쓰는 말로 급부상했다.
이게 진짜 불가항력이다.
좋은 기억력이, 그니까 총기 있어 보일 수 있는 강력한 무기 하나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지니까 너무 황당하다.

노트북을 챙겨야 하는 날이면 내려놓은 커피를 잊고 출근한다.
이틀 연속 이러고 있다.
노트북은 전날 저녁에 미리 가방에 싸서 신발장 앞에 두니까 까먹을 일이 없는데,
커피는 미리 내려놓을 수가 없고, 내리자마자는 한 김 식혀야 해서 뚜껑을 바로 닫지 못하니, 그길로 영원히 까먹어버리는 것이다.
뚜껑 안 닫고 신발장에 놔뒀다가는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불 보듯 훤하다.
그렇다고 식는 동안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퇴근하고 와서 커피가 고대로 담긴 텀블러를 설거지할 때면 기분이 몹시 상한다.
애먼 커피를 버리는 것도 기분이 나쁘고 깜빡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이게 몇 번 더 반복되면 노트북 가방을 전날 저녁에 차에 실어놓든지 해야겠다.
한 번에 하나만 기억할 수 있는 게 확정이라면 최대한 전처리(?)를 해둬야지 뭐 별수 있나.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나이 먹는 과정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데, 그 노력이 뭔지 아주 조금은 알겠다.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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