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21일

좋아하는 마음

By In DAILY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이다.
매해 여름 먹기 좋게 정육면체로 잘린 수박을 앉은 자리에서 싹 비웠다.
이때도 나의 귀차니즘은 열일했다.
수박 밑동을 잡고 먹게끔 잘라져있으면 한두 개 정도만 먹고 말아버렸다.
손과 볼에 묻는 게 싫었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을 앞지르지 못하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컵에 잘려 있는 수박은 좋아하지 않는다.
수박은 갓 잘랐을 때만 아삭하고 금세 자른 단면이 물컹해지기 때문이다.
까다롭기도 드럽게 까다롭다.
그래서 자취하고서부터는 한 번도 사 먹어본 적이 없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수박 먹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기필코 수박 먹는 여름을 보내겠다며 수박 한 통을 사 왔다.
어찌저찌 껍질을 잘라내고 속 알맹이만 발라내서 통에 담았다.
그러고 나니 주방이 난장판이 됐다.
수박씨도 여기저기 튀어있었고 수박 껍질도 수북이 쌓였다.
음식물 봉투에 담을 수 있게 수박 껍질을 자르고 주방 정리를 하고 나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수박을 다 못 먹었고 결국 물러져서 버린 이후로 다시는 사 먹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까 점점 귀차니즘의 에너지가 떨어져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동안은 너무 귀찮으니까, 먹고 싶은 마음을 눌러서 제어해왔던 것이다.
귀차니즘의 에너지가 얼마나 고약하냐면, A가 잘라놔준다고 하는 것도 말려왔다.
해준다는데도 그걸 하는 걸 보고 있는 게 마음이 쓰이니까, 안 먹고 마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진짜 유난이다.
여하튼 나이 먹으면서 힘이 빠지니까 억제하는 힘이 같이 약해졌다.
벌써 올해 들어 수박만 두통째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렇게나 강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죄 힘이 빠지는데 좋아하는 마음은 힘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걸 많이 찾아두라고 하나보다.

그나저나 여름이면 냉장고에 수박 떨어질 날이 없었으니까, 맨날 수박을 잘라서 넣어뒀다는 건데, 사랑 많이 받고 컸네.

겨우 수박 하나 먹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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