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눈이다.
그것도 함박눈으로 왔다.
낭만 없는 한국에서도 눈이 오면 얘기가 다르다.
절대 들어가지 않을 길에도 발자국을 찍으러 들어갔다 나온 흔적이 있다.
여기저기 눈사람이 만들어져있다.
내일 출근 어떻게 하지. 눈 더 오면 안 되는데. 따위의 생각이 들다가도,
신난 사람들의 마음에 괜히 저주를 내리는 것 같아 속으로 삼킨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썼던 일기에 한국에 온 이후로 나는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걷는 것 같다고 썼다.
그들을 허겁지겁 따라잡는 게 버거웠다.
눈이 오면 사람도 차도 드디어 천천히 움직인다.
뭐에 쫓기듯 급하게 어디론가 가던 사람들이,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을 본다고 뒤를 돌아보거나,
가던 길을 멈춰서 눈을 뭉치며 놀거나,
아예 짐을 내려놓고 눈사람을 만든다.
뭔가에 쫓기듯 급급하게 사는 한국인들이 갑자기 느려지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것이다.
항상 그들 틈에서 느끼던 외로움이 눈 위에 있을 때면 사르르 녹는다.
그나저나 어느새 그들보다도 더 급급해져서 출근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다행히 한국인이 다 됐고 동시에 싫어하던 모습을 갖게 되어 마냥 다행이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