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7일

충만하다

By In DAILY

갓 태어난 아기는, 감정을 배운 적 없어서, 감정이 일 때마다 본능적으로 운다고 한다.
커가면서 언어를 배우고, 느껴지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감정을 구분한다.
어릴 땐 감정을 깨달을 일이 많아서 그런지, 감정을 깨달았던 시점이나, 기억에 남는 인상이 없다.
반면 성인이 되어 알게 되는 것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7년 전 발리에서는 해방감을 알게 되었고, 어제는 충만함을 알게 되었다.

충만함에 대해 말하기 앞서,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몇 년 동안 매일 만난 친구들과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거의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다.
언제나 해오던걸 갑자기 못하게 된 만큼, 응당 아쉬움이 들기 마련인데, 친구 둘이 우는 와중에 겉돌고 있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눈물이 없는 편이니 눈물이 안날 수 있다는 말로는 설득이 안됐다.
누가 봐도 아쉬워야 마땅한 상황에 아쉬움이 들지 않는, 어떤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는 게 답답했다.

설마 내가 말로만 듣던 그 소시오패스인가?
도덕성이 결여된 것 같진 않으니 소시오패스는 아닌 것 같은데.
친구들과 지내온 세월이 그리 좋지 않았나?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으니까 그리울 것도 없는 게 말이 되는데.
물론 어불성설이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 기억을 꺼내 먹고산다.

어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을 2년이나 미뤘던 지인을 만났다.
밀린 근황을 나누다가, 최근 꽤 오래 같이 지낸 룸메와 따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이 살았던 시절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하기에, 그 시절이 아쉽지 않냐고 물었다.
한동안 생각하더니, 충만했기 때문에 아쉽지 않다고 했다.
아쉽지 않을 수 있는 건 여전히 곁에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충만하다는 단어는 엄청난 만족감의 형태인 줄만 알았는데,
아쉬울 상황에 아쉽지 않을 수 있는 것과도 같구나.
지인과 헤어지면서, 준 것 없이 얻은 것만 크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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