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

휴게소 가방

By In DAILY

9년 전쯤인가 다니던 회사에서 강릉 워크샵을 갔다.
워크샵이란 게 그렇듯 가던 길에 휴게소에 들렸다.
보통은 트로트가 들려야 마땅한데, 어느 나라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외국인 무리들이 자국 음악을 틀고 무용을 선보이며 자신들이 만든 수제 가방을 팔고 있었다.
많고 많은 디자인이 있었지만 단 하나의 가방에서 빛이 났고 그 자리에서 구매했다.

주위 사람들이 진짜 사냐며 눈이 땡그래졌다.
가방을 살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은 내가 가방을 들고 오자 진짜 샀냐고 놀라워했다.
이후에도 보는 사람마다 꼭 가방에 대한 피드백을 했다.
내 눈에는 정말 예쁜데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놀라운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꽂히는 아이템이 있으면 무조건 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헤질 때까지 쓴다.
업무용이 아니지만 업무할 때도 들고 여행용이 아니지만 여행 갈 때도 든다.
오래오래 쓰려면 다른 것과 번갈아가면서 써야 한다고 하지만,
이 가방 말고 들고 싶은 가방이 없는걸 어떡해.
그러다 보니 보풀이 일고 앞주머니는 찢어지기까지 했다.
처음 찢어졌을 땐 기워서 썼는데 이젠 기운 부분의 천까지 미어져서 꿰맬 수 있는 여지도 남지 않았다.
2년 전부터 가방을 보내줘야 된다는 걸 알았지만 대체할 가방이 나타나지 않았다.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스페인을 그리워할 수 있게 스페인 스타일의 가방을 사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놓고 들어선 가게는 에스닉 마켓이었다.
휴게소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또 스페인과 전혀 상관없는, 꽂히진 않지만 만족할 만한 가방 하나를 들고나왔다.
가방도 내가 본인에게 큰 감흥이 없다는 걸 알았나 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그 가방에 베르뭇 1리터짜리 3병을 넣고 달리다 어깨끈이 쫙 소리와 함께 한방에 찢기고 말았다.

연말답게 여기저기서 대폭 할인 소식이 들려왔다.
마침 유니클로도 할인 기간에 들어갔다.
후리스도 한 5년을 입었더니 보송보송했던 털들이 뭉쳐 양털 같아졌다.
5만 9천 원짜리가 2만 9천 원이라길래 이 기회에 두 장 정도 더 사자 싶어 유니클로에 갔다.
후리스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데 가방이 눈에 띄었다.
한 번도 잡화에 눈길이 간 적 없었는데 카키색의 뽀로로 스타일 가방에 첫눈에 반했다.
주머니도 많고 자크도 귀엽고 똑딱이며 두툼한 고무줄 끈까지 뭐 하나 귀엽지 않은 게 없었다.
이거다.

에스닉 가방만이 취향인 줄 알았더니 또 그렇지만도 않았다.
복잡해라.
그렇게 예기치 않게 드디어 휴게소 가방과 이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순식간이라니.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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