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런닝머신 위의 시간을 버티기 위해 음악을 들었다.
한국 노래도 틀어보고 팝송도 틀어보고 클래식도 틀어보고 온갖 노래를 틀다가 결국 비욘세의 Love on top을 틀었다.
달리기가 할 만해졌다.
종로로 출근하던 시절에 루프로 듣던 노래다.
징크스라고나 할까.
지각을 할 것 같을 때 이 노래를 틀면 신기하게도 우리 앞에 있던 차들이 길을 내어줬다.
그래서 차가 막히거나 마음이 급해질 때 습관적으로 틀게 된다.
듣는 것만으로도 조급해지고 시간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비욘세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미국 사촌언니가 생각났다.
나의 사촌언니들은 하나같이 독특하다.
셋이나 있는데 셋다 그렇다.
각각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만들어줬다.
미국 사촌언니는 나의 청소년기 담당이었다.
어느 날 문득 언니가 나에게 섹시가 뭔지 아냐고 물어봤다.
비욘세라고 대답했다.
언니가 뒤집어지게 깔깔 웃었다.
나보고 왜 이렇게 시시하냐 그랬다.
그런 거라면 시에라(Ciara)를 섹시하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자기 노트북을 들고 와서 시에라의 Like a boy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비욘세 섹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시에라 섹시는 시에라만 할 수 있는 거랬다.
민소매에 펑퍼짐한 바지를 입어도 섹시할 줄 알아야 진정 섹시한거랬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시시한 사람이 된다며 그렇게 boring 한 사람은 섹시해질 수 없다고 그랬다.
14살짜리가 뭘 알겠나.
언니는 언니 나름대로 나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했다.
언니방에 아무 때나 와서 언니 옷을 입어도 된다고 했다.
자기가 코디를 해서 나를 입히기까지 했다.
나는 브랜드 티셔츠에 카고 바지가 유행이던 반윤희의 나라에서 왔던 터라,
홀리스터나 아베크롬비의 옷들이 무척이나 어색했다.
상의는 딱 달라붙고 하의는 훤히 내놓고 다니는 옷을, 유교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턱을 들고 당당하라고 했다.
쑥스러워 몸을 배배 꼬면 언니는 또 boring 하다고 했다.
한국 시골에서 큰 14살짜리는 미국 토박이한테 당연히 boring한 존재였다.
언니가 말하는 섹시가 오히려 단순한 섹시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티끌만큼도 이해하지 못했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도 어쨌든 boring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경각심을 가지며 자랄 수 있었다.
세상이 정의해 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나만의 정의를 세우기 시작한 것도 다 언니 덕분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언니는 나한테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언니가 그동안 힘들게 터득해온 것들을 나에게 알려주어, 나는 덜 힘들게 지낼 수 있게 돕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알려줬던걸 쑥쑥 흡수했더라면, 인종차별도 당하지 않았을 거고,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던 날도 줄어들었을 거다.
나는 너무 어렸고, 언니는 서툴렀던 바람에, 아마 언니가 느꼈을 고난의 시간들을 나도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지금이라면 찰떡궁합이었을 텐데.
언니가 아끼는 옷을 몰래 훔쳐 입고 화장도 알려달라고 하면서 그렇게 boring 하지 않게 놀았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역시나 달리기는 진이 빠지는 운동이구나 다시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