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08일

기가 막힌 감

By In DAILY

어쩐지. 어제 그렇게 기분이 싱숭생숭하더니. 벌써 입추다. 작년도 재작년에도 어김없이 입추를 챙겼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감은 근거없는 갠또가 아니다. 분명 뇌가 인지하지 못하는 감각이 있다.

나는 감을 믿는 걸 경계한다. 느낌은 주로 섣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시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을 거란 확신이 있다. 그게 무의식 속에 수집되고 있던 정보든 편견이든. 무당이 아닌 이상 뭔가가 느껴진다는 건 인식에 기반한 판단이다. 그래서 스도쿠 하듯 끝까지 근거를 찾아낸다. 스무 고개를 하면서 아닐 가능성이 있는 옵션들을 소거해 나가다 보면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가 하나쯤은 있다. 설령 당장은 없더라도 시간이 흐른 후 불현듯 깨닫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어제 저녁엔 에어컨 바람이 차서 밤에는 잠깐 껐다. 무더위가 시작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아침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서는데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였다. 공기는 후텁지근하지만 하늘은 가을이네 생각했다.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서 비가 오려나 했다. 아니면 태풍 영향권인가 하고 찾아봤는데 둘 다 아니었다. 그러다 어제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 우리를 지나쳐가던무리들이 한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절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조금만 참아봐. 바로 꺾여.” 아! 오늘 혹시 입추인가? 바로 구글링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입추가 맞았다.

옛날에는 이런 얘기를 하면 끼워 맞추지 말라는 답변을 종종 들었다. 아니면 뭐 그렇게 쓸데없이 예민하게 하나하나 다 느끼고 곱씹고 있냐거나. 아, 어떤 사람은 미리 찾아봐놓고 예리한 척 연기하는 거 아니냐고도 했다. 그럴때마다 나 감이 꽤나 좋구나 싶었지만 동시에 내 느낌은 그저 어림짐작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한테 인정받아서 좋을게 뭐가 있나 싶지만 느낌과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연습을 하게 된 덕분에 신중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의 핀잔에도 꺾이지 않고 버텨준 소중한 감을 잘 갈고닦아서 요긴하게 써먹어야지.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