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1일

기획자는 예언가가 아니다.

By In WORK

요즘은 서비스 BM 기획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기획 시즌에 접어들면 똑같은 화면들을 몇 주 동안 하루 종일 본다.
플로우는 자연스러운지, 누락된 화면들은 없는지, 오탈자나 더 나은 워딩은 무엇일지 집요하게 뜯어본다.
흠이 없게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만들어 놓고는 흠을 찾는다니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딱히 아이러니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무조건 흠을 찾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국 완벽하지 않다.
내가 만든 게 무조건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터무니없는 흠을 발견했을 땐 어쩔 수 없이 풀이 죽는다.
바보같이 왜 그걸 놓쳤는지.
아무도 내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위축이 된다.

기획자의 가장 큰 덕목은 최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려서 누락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락이 생긴다는 건 곧 역량 부족의 방증이라고 느껴졌다.
매번 팀원들에게 화면을 공유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는지 모른다.
근데 인간은 완벽하지도 않은 주제에 적응은 빨라서 역량 부족의 경험이 반복되니 금세 합리화가 된다.
어쩔 수 없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떠올릴 수는 없어~
빠르게 수정하면 되지 뭐~
내가 혼자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크게 더 나아지지도 않아~

합리화는 정신승리에 가까워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은은한 찝찝함을 갖고 지내오다가 오늘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위로를 얻었다.
건강한 성장에 관한 아티클을 타고 타고 가다 우연히 읽게 된 글(링크)이다.
“개발자는 향후의 모든 변경을 잘 예측해서 미리 준비하는 것을 지향해서는 안된다. 이런 방식은 개발자가 아니라 예언가에게 적합한 방식일 것이다.”
전혀 다른 맥락의 글 속에 있던 몇 문장인데 내 상황에 적절한 조언이었다.

그래, 내가 무슨 예언가도 아니고!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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