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3일

실패로 돌아간 숏컷 시도

By In DAILY

머리를 감을 때마다 인상을 두세 번은 찌푸린다.
이제는 머리가 제법 길어 물을 머금으면 무겁기도 하고 히피펌까지 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엉켜서 풀릴 생각이 없다.
빗으로는 도저히 빗을 수 없어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리는 또 왜 이렇게 많이 빠지는지.
손가락에 머리카락이 걸려 고개가 확 재껴지면 내가 나를 친 건데도 괜히 기분이 나쁘다.
트리트먼트를 치덕치덕 바르면서 머리를 감는 건지 빠는 건지 모르게 씻을 때면 숏컷의 유혹이 스멀스멀 밀려든다.

어제는 L의 짝꿍인 여정 언니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언니는 숏컷이다.
숏컷이 너무 좋다고 숏컷을 하라고 연신 말해주는데 머리를 길러내느라 고생했던 날들이 싹 잊혔다.
그래.
지금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게 분명해.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일찍 누웠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장도연님이 출연한 요정식탁을 추천해줬다.
틀어놓고 듣다가 놀다가를 반복하는데 장도연님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숏컷을 하라는 계시를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주신거야.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일 좀 하다 아점을 먹고 커피를 사서 산책을 했다.
입춘이 코앞이라 날이 많이 풀렸더라.
길을 걷는데 마침 새로 오픈한 미용실을 지나쳤고 그곳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예약 가능 시간을 여쭤보니 5시 반.

겨우내 입던 목티 대신 목이 휑한 맨투맨을 입고 집을 나섰다.
겨울이 가기 전에 목티를 벗었다는 건 엄청난 결심을 했다는 뜻이다.
역시나 원장님으로부터 긴 머리를 단번에 싹뚝 자르는 게 맞냐는 확인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여차하면 심경의 변화가 있으니 더는 묻지 마세요라고 할까 했는데 확인 질문 대신 불길한 질문을 받았다.

“히피펌 하신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언제 받으셨어요?”
작년에 추워지기 전에 받았으니 시간이 좀 지났다고 답했지만 숏컷은 어렵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펌이 너무 잘 된 나머지 아직도 탱글탱글해서 이 상태로 숏컷을 했다가는 머리카락이 붕 떠서 동그라미가 될 거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귀엽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지만 내일 아침에 스트레스 받으며 재방문하실 확률이 80%가 넘을 거라고 거절하셨다.
나머지 20%에 제가 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지만 매직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고 다음에 예약 잡고 다시 방문을 부탁드린다고 쐐기를 박으셨다.
머리도 감겨주시고, 헤어팩도 해주시고, 엉킨 머리도 다 빗어주시고, 헤어 에센스까지 발라서 정성스럽게 말려주시며 말씀하시니 아무리 내가 결심을 했다 한들 끝까지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는데 못 뺐다 결국.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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