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11일

영어가 가장 늘었던 시기

By In DAILY

성장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사업을 시작하고부터는 그 어떤 때보다 성장을 갈구하기 시작하며 고통이 일상이 되었다. 고통이란 단어가 가지는 뉘앙스가 세고 부정적이어서 그렇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
오히려 요즘의 내가 가장 만족스러우니 걱정 않으셔도 된다.

사업을 하면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다. 이런 비슷한 시기를 두 번 정도 이미 겪어 본 덕분일까. 이런 시기라 함은 열심히 발을 굴러도 딱히 뭔가 더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시간 낭비가 아닐까 계속 의구심이 드는 불안한 구간이다. 두 번 중 한 번은 이미 소개한 적이 있으니 오늘은 그때보다 더 전에 겪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갓 미국에 들어갔을 때였다. 영어 시험 성적이 60점이 나왔다. 14살의 나는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60점을 받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매일 울었다. 시험뿐만 아니라 영어 숙제도 문제였다. 주로 짧은 이야기를 읽고 교훈이 무엇인지 또는 화자의 기분을 서술하라는 숙제였다. 다른 친구들은 10분이면 끝낼 일을 영어사전을 뒤적거리느라 매번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반년 정도 뒤에는 대충 읽히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답을 찍을 수도 있었지만 한 문장이라도 못 이해하면 불안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상한 강박증 때문에 나의 강행군은 지속됐고 1년 만에 사전의 도움이 필요 없어졌다.

에세이 시험도 잊을 수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에세이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지 않으면 FAIL을 시키고 PASS 할 때까지 매해 시험을 보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는 당연히 2년 동안 내리 시험에서 FAIL 했다. 그 시험을 본다는 건 열등생을 의미했고 하필 영어 시간에 차출되어 보러 가는 시험이다 보니 호명될 때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첫 낙방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으로 합리화가 되었는데 두 번째 시험을 떨어지고 나니 아득했다. 아무리 영어로 일기를 써봐도 주제를 정해서 에세이를 써도 영작을 손봐줄 사람이 없었다. 교포 친구들에게는 창피해서 봐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원서 하나를 골라 줄줄 읽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어 책은 많이 읽을 수 없을 것 같으니 하나라도 떼보기로 했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고 그걸 원서로 사서 계속 읽었다. 이미 아는 내용이다 보니 해석이 잘 안돼도 어떤 내용이겠거니 하면서 계속 읽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영어가 늘 때가 돼서 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세 번째 시험에서 PASS를 받았다.

또 한 번의 퀀텀점프는 인터넷이 고장 났던 두 달의 여름 방학 동안 일어났다. 방에만 처박혀서 한국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을 정주행 할 계획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온 신경과 감각이 곤두서있었으니 숨통이 트일 시간을 내게 선물하려 했다. 근데 참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다. 딱 마침 인터넷이 고장 나버렸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서비스가 신속하지 않다. 수리 센터에 신청을 했더니 두 주 뒤로 방문 일정을 잡아주었다. 두 주 뒤 수리 기사가 방문해서는 자기 담당이 아니니 담당자를 배정해 주겠다고 했고 그 방문 일정 역시 두 주 뒤로 잡혔다. 이런 식으로 두 달이 흘렀다. 꼼짝없이 인터넷 없는 방학을 보내야 했다. 교회에 있는 한국책은 몽땅 다 읽었고 집에 있는 한국 영화 DVD도 이미 다 본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미국 드라마 DVD를 정주행 해보기로 했다. 한글 자막이 없는 미국판이었기 때문에 방학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건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심심했다. 사촌 언니의 책장에 꽂혀있던 DVD 중 설명이 가장 매혹적이었던 드라마를 골랐다. ‘She sees what other can’t.’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는 고스트 앤 크라임으로 알려진 시리즈다. 100편 가량의 에피소드를 방학이 끝날 때까지 두세 번 정도 정주행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긴장을 풀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갔다. 한국어로 번역해서 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들렸다. 말 그대로 귀가 뚫린 것이다. 이 이후로는 한글로 먼저 생각하고 번역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영어로 바로 이해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충격적인 결말은 저 시기엔 내가 영어가 늘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익숙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영어를 할 줄 아는구나 알게 된 건 한국으로 돌아온 후였다. 관광지에서 커피숍을 운영했다 보니 외국인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교포인 줄 알았다고 했을 때 그때 알았다.

성장을 하는 동안엔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길이 없고 다 지나고 나야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잔인하지만 이게 성장 공식인가 보다. 사업도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괄목할 만한 성과 = 우리 서비스로 먹고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성장을 하고 있는 건지, 자리는 잡고 있는 게 맞는지, 방향은 옳게 가고 있는지 뭐 하나 명확히 어떻다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지금껏 겪어온 성장의 시기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번에 찾아온 성장통은 기대가 되기까지 한다. (게다가 좋은 동료들과 함께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Written by hershey

안녕하세요 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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