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을 남겨두고 서울로 돌아왔다. 뭐든 아쉬워야 두고두고 생각난다. 당분간 다음을 기약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닫아버리진 않을 것이다.
황급히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와중에 다음을 묻고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미 그곳에 가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밥 먹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든 행동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한 나는 어느 공간과 시간에 적응하기도 전에 다음으로 옮겨졌다. 이런 나의 상태를 눈치채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딘가 이가 나간 톱니바퀴처럼 헐겁게 맞물리며 돌아갔다. 원래의 나였다면 한순간 살얼음판으로 만들었을 테지만 그럴 거란 걸 알았는지 A가 제대로 넉다운 됐다. (그녀의 쾌유를 빌며..)
예민한 나는 새로운 환경과 경험이 엄청난 스트레스다. 당연히 두 밤 모두 빨리 잠들지 못했고 간신히 잠들어도 내 자신이 뒤척이는 소리에 깨곤 했다. 화장실도 못 갔고 밥도 먹던 양만큼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않은 것들을 굳이 찾아 하는 이유는,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자신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잘 사는 사람(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익숙하고 편한 것들만 취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어린아이의 상태로 빠르게 퇴화함을 느낀다. 물론, 결국 사람은 늙고, 노인이 되면 물리적 퇴화에 의해 어린아이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시점을 내 손으로 끌어당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알게 된 나는, 생각 외로 서핑보다 다이빙을 좋아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느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무뎌지면 좋겠지만, 예민함은 여전한 것도 확인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데 정을 다 깨부수는 돌이 된 기분이었다. 아! 그리고 기억에 남는 풍경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아무리 떠올려도 제주의 바다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여름 밤의 꿈같다.
